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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92. 구이.

Essay

by 고대92 2022. 10. 1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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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freestocks, 출처 Unsplash

살아오면서 커다란 변곡점에 해당할 시점을 몇 번은 겪었을 것이다. 첫사랑. 첫 직장 첫 출근. 결혼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등등. 그 많은 시점들 중에서도 특정 숫자와 함께때려죽인다 해도 도저히 잊을 수 없도록 각인되는 순간은, 내 짐작으로는, 태어났을 때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오직 그 두 시점 밖에 없다. 특정 숫자와 함께 문신처럼 새겨지는 순간. 그런데 탄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벌어진 사건이며 온전한 자의식을 갖추고 맞이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 제외한다면. 숫자와 맞물려 각인된 단 하나의 시점이 남는다. 대학에 입학한 해.

더 의미 깊은 사건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숫자와 함께강렬하게 각인되지는 않는다. 가령, 결혼을 몇 년도에 했는지, 첫 아이가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 갑자기 물어보았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대학에 입학하였느냐 누군가 물어본다면,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친구들이라면, 갑자기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반사적으로 그 숫자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 당장을 살아내는 것이 생생하고 절박하니 흘러간 일은 아예 없었던 듯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와중에 문득, 지금의 좌표를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기준으로 삼을 만한 원점같은 무엇이 필요할텐데, 그 숫자가 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숫자를 떠올리며 머리 속 구석구석을 살살 긁으면, 그 때의 그 시공간을 채우고 있던 온갖 색감과 냄새와 질감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상황에 따라 1호선 제기역 또는 2호선 신설역. ‘안암동 그 길은 아직 참살이길이 아닌 인촌로 몇길쯤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유흥가라기 보다는 낡고 조용한 동네 상점길에 가까웠다. 허름한 하숙집마다 어른 키를 살짝 넘는 블록조 담장 위에 시멘트 몰탈을 떡칠 해 올리고 깨진 병을 붙여 놓았는데, 그렇게까지 경계하고 지켜야할 것이 무엇이었을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지. 그 사이로 드문드문 음식점들이 있었는데, 맛 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밥집들이 많았다. 삼사층짜리 상가건물도 있었는데, 그 안에는 나름 수줍게 멋 부린 카페랑 드물게 외국계 프렌차이즈 음식점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패스트푸드 가게로 분류될 만한 곳이 던킨도넛딱 하나 있었는데, 다른 동네 평범한 던킨도넛과는 사뭇 다르게, 가게 한 구석에 별도의 매대를 갖추고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고대생들은 대체로 촌스러워. 자랑스럽게 촌스러워. 그래서인지 민족문화가 고유성을 잃고 변질되는 것에 민감해 하는 것이 보통이야. 그리고 고대생들은 과감하게 주저없이 행동해. 학교 앞에 던킨도넛이 들어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어떤 선배가 불쑥 들어가 눈 동그랗게 뜨고 큰 목소리로 여기 떡볶이는 안 팔아요?” 라고 물어보더래. 매일 물어보더래. 가게 주인이 질리고 지쳐서, 결국은 별도의 매대를 만들어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네.” 하숙집 형(나는 집이 서울이었지만 어떤 가정사로 인해 하숙집에서 지내고 있었다.)이 유쾌함 반, 쑥스러움 반 풀어놓은 설명이었다. 이 일화는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우리 학교 분위기를 가볍게 소개할 때에도 쓰기 좋았고, 소개팅의 어색함을 해소할 때에도 제법 유용했다. 그 때 내 기분은 복잡했고, 어투에 깃든 뉘앙스는 미묘했다. ‘암담하게 재미없는 동네라는 하소연과 어찌되었든 컬러(?)가 뚜렷한 집단이라는 자긍심이 뒤섞인 톤이었다고나 할까. 나 자신은 너무 막무가내식으로 그런분위기랑은 살짝 거리를 두고자 함을 애써 드러내는 동시에, ‘그런분위기의 한 갈래에 나 또한 기꺼이 물들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설렘 또한 드러내는. 그런 표정었다고나 할까.

 

하숙집은 기숙사가는 길, 개운사라는 절 근처 주택가에 있었다.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네모 반듯한 건물이었다. 1층에는 가운데 복도를 두고 일곱개 정도의 방을 두었는데, 처음부터 하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구성이었을 것이다. 2층에는 주인집 가족이 살고 있었다. 2층 주인집 거실에서 다 같이 밥을 먹거나, 각자 빨래를 찾아가거나 했다. 한 방에 두 학생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나는 방 하나를 혼자 썼고, 하숙방으로서는 유일하게 침대도 들여놓고 티비도 들여놓았다. 집이 서울인데 하숙한다는 신입생을 형들은 신기해 했다.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옆 방 형들은 막연히 무서웠다. ‘녹두문대형들이나 호안정대형들은 특히 더 무서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 사람들의 전문용어들이 얼마나 살벌하고 멋져 보였는지 급기야 무서울 지경이었다. 주말 저녁 식사 후에는 그 것이 알고 싶다.’를 보러 그 무서운 형들이 작은 내 방으로 몰려들었다. 침대랑 방바닥이랑 옹기종기 꽉 차게 모여 앉아, 문성근 말 한마디 한마디에 왁자지껄했고, 쓸쓸한 마음이 금세 훈훈해졌다. 나에게 속한 것으로 무서운 형들에게 무언가를 배풀어 준다는 기분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말이 무섭다고 한 것이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형들이 많았고, 실제로 친하게 지냈다. 나는 그 때 옷 욕심이 있었는데, 용돈은 한정되어 있었다. 일종의 번아웃과 무기력으로 밤낮이 뒤바뀐 삶을 살면서 잘 씻지도 않아서 몸에는 쉰 내가 났다. 강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공용 빨래 건조대에 하얗게 예쁜 티셔츠가 있었는데, 내 옷인 것처럼 들고 가는 것이 매우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오버사이즈로 늘어지는 스타일이 내 취향에는 잘 맞았다. 입은 채로 동아리 방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유화물감이 묻어 지워지지 않았다. 그 옷을 공용세탁바구니에 넣는 것 역시 매우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무서운 형들 중 유독 키 크고 이목구비 뚜렷하게 멋있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옷주인이었다. 하루는 아침도 먹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조심스럽게 흔드는 것이다. 귀찮아서 잠든 척 가만히 있었다. 무서운 형들끼리 소곤소곤 나누는 말이 들렸다. “이거 경환이가 입었던 것 같은데, 뭐가 묻었네. 잘 지워지지가 않아. 선물 받은 옷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나머지 대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뒤. 다른 무서운 형이 살살 웃으며 햇볕도 쐬고 바람도 쐬러 가자고 꼬셨다. 웃음이 많고 너스레를 잘 떠는 형이었다. 이런저런 구경하다가 문득 나에게 옷을 사주었다. 그걸 받는 일도 매우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그 것이 알고 싶다.’는 그 이후에도 어김없이 재밌었고, 문성근의 진행은 비현실적으로 몰입감이 높았다.

 

사발식, 수강신청, 퀴즈, 엠티, 미팅, 중간고사, 축제, 418마라톤, 고연전, 동아리전시회.

하숙집, 주점, 강의실, 동아리방, 만화방, 안암로터리, 신촌, 이대앞.

그 숫자’, ‘그 시공간에 깃들어 있는 이런저런 에피소드들.

그 사건들의 정서를 관통하는 것은, 다름아닌 던킨도넛 떡볶이 이야기하숙집 하얀 티셔츠이야기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감정선이다. 나는 황당했고, 기뻤고, 우울했고, 설레었고, 부끄러웠고, 자랑스러웠다. 흥분해서 무기력했다. 그래서 드러내고 싶었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다.

 

대학 입학이라는 사건이 특정 숫자와 함께 각인된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순서를 부여해 집단에 온전히 집어넣기 위함이었겠지. 그래서 틈나는 대로 목청 터지게 그 숫자를 소리치게 했겠지. 이름 앞에는 반드시 그 숫자를 붙이게 했겠지. 배경에는 분명 폐쇄적인 우월의식이 있을텐데, 그 때에는 참 이상하고 신기하게만 느껴졌지만, 알고 보면 대학이라는 데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런 속성의 사회다. 우리 학교가 다소 유별나긴 하지만 우리 학교만 그런 게 아니고, 우리나라 대학만 그런 건 더더욱 아니야. 그런데 내가 각인된 그 숫자와 함께 기억하는 일들은, 고대에서 고대생이었기에 가능했던 어떤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또래 우리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로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텐데, 배경이 고대고 주변사람들이 고대생이었기에 덧붙여지는 어떤 패턴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양상과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과거는 과거이기에 아름다울 뿐, 과거가 지금 만큼 빛날 수 없고, 과거 만으로 미래를 열 수 없겠지. 열었던 서랍 다시 닫고, 다시 오늘을 살아가자.


공과대 건축공학과 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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