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코로나19 통제로부터의 자유

Essay

by 고대92 2022. 10. 17. 19:48

본문

16세기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르네상스 운동이 한창 절정인 시기이다. 이 시기 1500년경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그린 《광인의 배》가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다. 상당히 난해한 그림이다. 꼭대기 해골을 보면 배는 틀림없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승선자들은 음식, 욕정 그리고 탐욕에 걸신들린 듯하다. 이들의 ‘일탈’과 ‘비정상’은 르네상스가 상징하는 가치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광인의 배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마을 밖으로 쫒아내는 도구였다. 서양문화는 정상적이지 않은, 그러니까 부랑자, 사회 부적응자, 집착하는 자 등을 모두 광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정상인이 사는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다. 이것은 마을 안정을 위해 비정상 낙인을 받은 자들을 은밀히 배제하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쫒겨난 광인들 중 일부는 새로운 땅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그곳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 정신보건체계를 만들어가는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비정상인을 사회로부터 배척하는 문화는 동양도 마찬가지다. 일본에는 1950년대까지 ‘자시키로’라는 독방이 있었다. 가족 중 정신장애인이나 몸을 가눌 수 없는 노인을 가둬두는 방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사회복지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직장에 나가지 않는 가족이 그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았고 그것도 어려우면 자시키로를 이용하였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서양과 동양 모두 사회 안정을 명목으로 비정상인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아 왔다. 이제는 사람들이 종식일을 궁금해 한다. 대만과 뉴질랜드는 국가 간 이동을 강력하게 통제하였고, 쿠바는 감염자에게 생활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사회로부터 확실하게 분리시킴에도 감염의 확산은 막을 수 없었다. 새로운 변종과 진정세의 방향은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나름 백신면역이 아닌 확진면역을 가지게 되면서 코로나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코로나 난감한 상황을 거치다 보니 확실히 일탈과 관련된 자살, 범죄, 중독, 비행과 같은 소식과 아노미와 같은 가치관 혼란 현상은 줄었다. 다소 해방된 듯 코로나 규제 해방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공식적 바이러스 독립선언이 있기 전까지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일탈을 막기 위한 공공기관이나 의료시설의 통제적 관리는 유지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역통제는 앞으로 일탈자와 정상인을 확실하게 분리할 것이다. 이제부터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일탈자 관리 못지않은 비일탈자의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이다.

 

본인은 사회적 교류의 통제에서 유발되는 정신적 고통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기로 했었다. 일찍 퇴근하면서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이 빨라졌다. 그러다보니 새벽시간 책과 신문을 보게 되었고 그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주말이 오면 7살 쌍둥이 아이들을 데리고 생전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시골집을 찾아갔다. 시골 공기가 이렇게 좋은 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그만 모임에서 비대면 행사, 골목길 투어, 자전거 타기 등을 주도하여 보았다. 바깥 공기 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족적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참에 아픔에 대해 의미두기도 해보았다. 어릴 적 가족 실수로 생긴 화상을 밉게만 보아왔다. 지금은 가족 탓만 아니고 나도 조심했었어야 하는데 생각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골절치료를 받을 적 아픔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도 참았는데 이것쯤이야 하는 위안의 기준이 되었다. 이제 내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오고 면역세포가 이들을 잡아먹으면 나는 경험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고 더 성숙해질 것이다. 순간 아픔을 느끼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면 되리라 하는 새로운 경험치를 갖고 새로 적응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통제사회로부터 자유를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코로나 확진되면 더 성숙해 지리라 맘먹었는데 최근 확진세가 확 꺾인 것 같다. 성숙하고 싶다고 찾아가며 확진자가 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어쨌든 11월 5일 입학 30주년 모교방문축제일 취소되진 않겠지?

 

설마..


문과대 사회학과 윤형곤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지(奧地) 아니 NZ에서의 첫사랑  (1) 2022.10.18
고대가 열어준 세계  (1) 2022.10.17
어느 봄날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행복  (1) 2022.10.17
우리들의 이야기  (2) 2022.10.17
1992년 한여름 밤의 꿈!  (2) 2022.10.15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