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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Essay

by 고대92 2022. 10. 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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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96년 교육학과 졸업사진 중에서

일명 X세대로서 이름을 날렸던 우리 92학번들은 전 세대와 비교하여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랐으며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들이었다. 

우리들이 고려대학교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1년 12월. 학력고사 세대인 우리들은 지금은 헐리고 새롭게 들어선 옛 교양관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신분으로 학력고사를 치렀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나오는 한기, 메케한 연탄난로에서 나는 냄새, 낡은 책걸상이 줄 맞춰있는 교양관 강의실에서 우리는 고려대학교 그리고 교육학과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이다. 

 

사범대 교사인성 면접시험을 거쳐 1991년 12월 말 합격통지를 받은 우리들은 겨울 내내 맘껏 놀면서 멋을 부리고 1992년 2월 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다시 만났다. 사범대학 오리엔테이션 장소였던 포천으로 출발하기 위해 먼지가 풀풀 나는 대운동장에서 쭈뼛거리며 잘 알지 못하는 선배님들과 동기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버스에 오르던 모습이 선하다. 오리엔테이션 장소로 이동하는 약 2시간의 시간도 대체로 어색했었지만, 교육학과 학생회장님의 듬직한 모습과, 신입생을 각종 과내 학회와 학생회로 포섭하기 위해 분위기 띄우기 작전에 여념이 없었던 91, 90학번 선배님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어색한 분위기는 ‘막걸리 마시기’ 한 방으로 누그러졌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기에도 충분한 큼지막한 빨간 고무다라에 나일론 쌀자루로 싸여진 비닐에 담긴 엄청난 양의 막걸리를 쏟아 부어 방 한가운데 놓아두고 막걸리를 마셨다. 취기와 객기를 이기지 못한 어느 학우는 옷을 입은 채로 막걸리가 담겨 있는 빨간 고무다라에 들어가 일명 ‘막걸리 목욕’을 하고 나와 따가운 주의의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여하튼 92학번의 공식적인 활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월 입학 후 우리들은 선배님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입학하면서 받은 고대수첩에 선배님들과의 ‘밥 약속’을 기록하며 낯설지만 흥미 있는 대학 강좌를 접하게 되었다. 차석기, 정우현, 왕기항, 김정환, 유인종, 박도순, 전성연, 임규혁, 김형관, 권대봉 교수님들이 새내기인 우리들을 맞이해주신 분들이다. 이때 당시의 화두는 당연히 무시무시한 ‘사발식’이었다. 학생회관 지하 식당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가히 우리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다수의 사발식 도우미 선배님들의 케어에도 불구하고 동기 하나가 잠시 정신을 잃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모두가 잠깐 긴장하기도 했었다. 

 

1992년은 국내외적으로 일이 많았다. 소련이 붕괴되어 많은 독립국이 생겨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여파를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았으며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았었다. 3월 14대 총선, 12월 14대 대선을 앞두고 서울시내에서 산발적으로 시위가 잦았으며, 제1기 한총련 출범식이 고려대학교에서 열리게 되어 학교는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일부 동기들은 빨간 풍선, 파란 돌, 교육문제 연구반, 편집부, 통일소모임 등의 과 내 학회에 가입하여 열심히 활동하였고, 일부 학우들은 사범대 노래패 함성, 풍물패, 교육신보사, 종교, 컴퓨터, 야구, 역도, 태권도 동아리 등 학교 동아리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일부학우는 학교 근처 전자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화이터, 테트리스, 라이덴 등에 심취하였고, 무엇보다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와 함께 동전 노래방의 출현으로 새로운 놀이 문화를 느껴보려는 욕구를 맘껏 드러내 보기기도 했었다. 교육학과 판 서태지와 아이들인 ‘유OO과 쓰레기들‘도 생겨나 학교 앞 OB광장과 운성식당 등지에서 동기 및 선배님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92학번에게 익숙하고 친근감(경우에 따라서는 혐오감)을 주는 대표적인 곳은 통일광장, 하얀호프, OB광장, X호프, 학사주점, 운성식당, 호질, 사랑만들기, 옹달샘, 고모집, 이모집, 나그네 파전, 풍년집, 마마집, 동경장, 로비장, 대림장, 향월여인숙, 형제집, 부산집, 임프, 안암꼬치, 삼성통닭, 로제, 무진기행, 호돌이 분식, 씨드, 러쉬, 썅투,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설성반점, 이화반점 등이다. 휴대전화가 없어 음침하고 담배와 술 냄새로 찌든 과방에서 직접 만나 약속 장소로 이동하거나 과방에 있는 미니 보드나 소리샘에 약속 장소를 남기는 전근대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2, 3학년이 되면서 남자 학우들은 군 입대를 하기도 하고 각자의 진로에 맞게 부전공, 복수전공을 신청하여 공부하였다. 사도원 고시반에 들어가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대학원을 준비하는 친구, 회사 취업을 위해 토익 등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즈음에 IMF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인해 많은 동기들이 취업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 졸업을 하여 교사, 학원 강사, 회사원,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여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92학번들을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이글을 마치고자 한다(가나다 순). 

 

  강경림 - 성격이 활달하고 눈치가 빨랐던 친구. 테니스 잘 함.

  곽승훈 - 영어 및 암기력 뛰어남. 당구, 전자오락 등에 능함. 키가 크고 몸집 좋음. 오서방.

  김강필 - 광주 출신으로 말수가 적고 고독을 즐겼던 친구. 생각이 깊으며 개성이 강했던 친구.

  김관해 - 항상 웃는 얼굴에 근심 없이 해맑았던 친구. 붙임성 좋고 노는 거 좋아함.

  김대갑 - 어색하면서도 굵직한 목소리로 봄여름가을겨울의 아웃사이더를 즐겨 불렀음.

  김대석 - 강원도 태백 사나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독설가 스타일. 생각이 깊음.

  김인숙 - 개인 사정으로 3월 중순부터 학교 다니기 시작함. 동기 유기웅과 결혼.

  김주성 - 강원도 양구 출신. 부리부리한 눈과 엄청난 입술. 술을 비롯해 못하는 게 없으며 마당발임. 의리파. 주둥이, 주딩 등으로 불리기도.

  김한별 - 학구파. 생각이 깊고 후배들한테 인기가 많았음.

  김현석 - 울산 출신의 멋진 경상도 사나이. 굵직한 목소리가 매력 포인트. 성실하고 성격이 원만함.

  김흥선 - 경기도 구리 출신으로 차분하고 가냘픈 목소리로 중국어에 능통했던 친구.

  김희선 - 수업시간에 예리한 질문과 통찰력이 있었던 친구. 공부를 잘 했고 똑똑했으며 동기에 대한 정도 많았던 친구.

  노정민 - 귀여운 이미지답지 않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막걸리를 잘 마셨음.

  박주영 - 교육학과의 멋쟁이. 스타일리쉬한 패션과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동기애가 많고 어른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여줬던 친구.

  박희성 - 파라과이 출신으로 스페인어에 능통했으며 모범적인 학교생활로 인기가 많았던 친구. 학업 포함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열심이었던 친구.

  백종필 - 진주 출신. 재미있고 독특한 억양으로 동기에게 인기가 많았던 친구. 성실하며 동기애가 많은 친구. 낄렐레.

  서영범 - 키가 크고 몸집이 좋으며 얼굴이 항상 하얗던 친구. 컴퓨터에 능함.

  신웅현 - 공주 명문 한일고 출신. 정이 많고 예의바른 친구. 야구를 사랑하여 교내 야구동아리 포수 역임. 높은 톤 노래 잘 부름. 술을 즐김.

  오현화 - 광주 출신. 입학 후 바로 휴학하여 1학년 생활을 같이 하지 못한 친구. 국어와 국문학에 관심 많았음.

  유근만 - 동해 출신으로 성격이 원만하여 선후배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학과 및 학회일에 항상 고민하고 앞장섰던 의리파 친구. 군만두.

  유기웅 - 교육학과의 대표 미남. 동기 김인숙과 결혼.

  육진수 - 쾌남아. 부산 기장 출신으로 성격이 활달하고 원만하고 재치 있는 말솜씨로 인기가 많았던 친구.

  윤경원 - 이국적인 마스크와 눈매로 카리스마가 있었던 친구. 학구파. 교육신보사에서 일했음.

  윤복수 - 날렵하고 정확한 슛으로 농구계를 평정했던 친구. 정이 많고 성격이 활달.

  윤상선 - 광주 출신으로 생각이 깊고 공부를 열심히 했던 친구. 진로에 대해 항상 고민했으며 동기들과 잘 어울렸음.

  윤창호 -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라 창호형으로 불렀음. 생각이 깊고 순박한 웃음이 매력. 검은 뿔테를 쓰고 다녀 고시생 룩.

  이관형 - 대구 사나이. 사범대 노래패 함성에서 활동하였으며 노래를 매우 잘 부르고 멋진 목소리를 가졌음.

  이기태 - 김제 출신으로 초기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많이 노력했던 친구. 예리한 눈과 자존심이 강했던 개성 있는 친구.

  이봉수 -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형님다운 말투와 행동. 순박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친구였음. 

  이수진 - 말수가 적고 차분하고 다소곳한 스타일.

  이승옥 - 부산 출신으로 학과 및 학회 일에 적극적. 의외로 마음이 여려 울음이 많았던 친구. 

  이용진 - 교육학과의 가수로 함성에서 메인 보컬로 활동.

  이은숙 - 학구파. 차분하고 잘 웃었음. 태권도부.

  이정민 - 울산 큰아기. 수줍은 얼굴, 잘 웃었으며 성격도 원만. 학과 및 학회 활동에 열심. 

  이정태 - 음악과 고독을 즐겼던 낭만파. 컴퓨터 분야에도 관심 많음. 어린왕자.

  이태영 - 학구파. 눈부신 학점으로 조기 졸업하였음. 태권도를 무척이나 잘 한다고 소문난 친구. 이태영 여사.

  이형석 - 광주 출신으로 깔끔하고 모던하며 매너가 좋았던 친구. 숨은 학구파.

  이희승 - 정이 많고 희생정신이 많은 의리파. 학번 대표로도 활동했음.

  장경민 - 퉁퉁하고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스타일. 교내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하였음.

  장승호 - 술과 친해지려고 많이 노력했던 대구 사나이. 고독을 즐겼으며 동기에 대한 정이 많았던 친구. 역도와 컴퓨터에 능함. 신기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었음.

  전 영 - 부산 사나이. 스타일리쉬한 안경과 헤어스타일이 돋보였음.

  정영진 - 마른 체구에 둥근 안경을 썼으며 치아 교정기가 인상적이었음. 함성에서 기타를 연주. 폴.

  정재복 - 강원도 출신으로 순박하고 정이 많았던 친구. 

  정지웅 -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로 농구를 무척 잘하던 친구. 

  조형정 - 서울깍쟁이 스타일. 성격이 밝고 평화로우며 공부를 잘 했던 친구. 학구파.

  차부근 – 신중하고 개성이 많았음. 약간 아저씨 같은 스타일.

  최정희 - 굵직한 보이스가 매력적이었던 친구. 수줍음을 잘 타며 명랑하고 성격이 밝았던 친구. 

  현영섭 - 퉁퉁한 얼굴과 몸에서 포스가 느껴지는 친구. 숨은 학구파.

  홍정림 - 진주 출신의 다부진 체구에 부지런하고 동기애가 많았던 친구. 사범대 노래패 함성에서 활동.

  황규명 - 퉁퉁한 체구에 사범대 노래패 함성에서 보컬 및 키보드를 연주하였음. 똥구멍으로 불리기도.

  황선경 - 애교 있는 특유한 목소리와 말투가 트레이드마크. 교육학과의 숨은 멋쟁이.


사범대학교 교육학과 유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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