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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가 열어준 세계

Essay

by 고대92 2022. 10. 1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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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려대학교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i2DtwvhYxN/?utm_source=ig_web_copy_link

30년 전, 고대 가서 놀랐던 건 나도 가난한 지방학생 뭐 글케 주눅들어 갔는데 학교 가보니 정말 어디서 글케 모았는지 전국 각지 돈없는 시골 촌놈들이 내 주변엔 득실득실했다. 그래도 그 양반들 후배들 데리고 학생회관 식당엔 열심히 다녔다. 선배는 걸어다니는 식권이라 했던 시절이라 800 1200원 하던 식당밥 많이 얻어먹었네. 암튼 그때 연대로 간 중학교 절친이 있어 한 번씩 놀러가서 보는 신촌 라이프하고 정말 비교가 되더라는...

 

같이 대학 온 고등학교 친구넘 찾아 놀러갔던 기독학생회(SCA) 동아리는 담배 연기 자욱한 너구리 굴이었지만 처음 본 선배들이 그다지 낯설지 않고 정겨웠다. 목요일마다 동아리방에서 해방신학 뭐 이런거 공부하고 그랬는데 그건 개뿔이고 매일 까치집에서 콩나물에 시큼한 막걸리 소주 마시며 이땅에 하나님 나라 투쟁 뭐 이랬더랬다.

 

동아리 이름이 기독학생회인데 줄여서 기생. 옆에 불생 카생 동아리 방이 있었다. 기생은 고대보다 역사가 오래된 동아리라 했는데 우리 때 즈음에 말아먹고 문 닫았다. 뭐 재미없는 곳이라 그랬다 생각하지만 쩝. 농활 자금 모으려고 선배들 찾아가면 머리 허연 선배들이 불고기에 낮술 사주시며 6.25시절에 농활갔던 이야기 해주시던 동아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선배들은 다들 무언가를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었던 듯.

 

한번은 선배누나들 따라 신촌 세브란스에 84학번 까마득한 선배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노동운동 하다 백혈병 걸려서 투병중이던 임혜란 누나. 그 때 딱 한번 봤다. 머리에 두건 쓴 누나는 후배들을 반가워했고 느슨한 동아리에는 속상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 딱히 돈도 없고 어떻게 해드릴게 없던 동아리 사람들이 이런 저런 궁리하다 헌혈증을 모아 드리자고 해 학교에 헌혈차를 불렀다. 적십자에서 인원 얼마 이상이면 단체 헌혈차를 보내줬는데 본교와 이공대 뭐 등등 해서 몇 대를 불렀나 그랬다.

 

나는 애기능 이공대 헌혈차 앞에 서서 대학 들어온 이후 정말 제일 열심히 소리치던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학우들이 줄을 서서 헌혈차로 들어왔고 기대보다 훨씬 많은 헌혈증을 모았다. 그날 눈이 왔었다. 그래도 춥진 않았다. 고연전을 경험하고도 그리 낯설던 고대가 처음으로 따뜻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학년 한 학기가 지나 군대를 갔고 군대 가기 전 누나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리 사람들이 누나의 글을 모아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는 조그만 책자를 만들었다. 그 후 이십년 넘게 살아오며 한번씩 그 누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때 까마득한 선배였지만 이십대 후반의 꽃다운 그 청춘. 사랑하던 연인을 두고 가셔야 했던 그 마음이 어땠을까 떠올리면 참 복잡한 감정이 많이 든다.

 

대학 시절 알게 모르게 많은 도움받으며 성장했는데 임혜란 누나는 내 얼굴도 이름도 모르겠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기억이 생생한 대학시절에 내가 그 사람 알았다는 기억 하나만으로도 고마웠던 선배 중 한 명이다.

 

고대 학생회관 앞에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80년대에 학교를 다니다 어느 순간 민주화 투쟁의 앞길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던 선배들을 기억하며 후배들이 세운 조그마한 비. 고려대학교에는 멋진 건물도 많고 정재계에 유명한 선배들도 자랑스럽지만 내가 고대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그 비석 때문이기도 하다.


문과대학 노문노문학과 신준철


 

※ 참고자료 : 84 임혜란 선배님 약력

 

출처) https://www.kdemo.or.kr/notification/calendar/post/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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