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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키는 형사(드림폴)

Essay

by 고대92 2022. 10. 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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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harlynkingm, 출처 Unsplash

죽음 한복판에서 삶을 꿈꾸다.

 

늘 죽음을 마주합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죽음을 봅니다. 냄새 맡고 만져보고 때로는 모든 감각을 집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각자 다른 사연을 간직하고 망자가 된 분들을 마주할 때면 그 분들이 말을 걸어옵니다. 자신들의 억울하고 힘들었던, 무섭고 끔찍했던 사연을 말하려는 듯합니다. 말 없는 망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하고 그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 전해져 분노로 피가 끓어오르기도 합니다. 형사들은 그렇게 시체와 대화를 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풀어나가기 위한 수수께끼의 첫 실마리를 찾습니다.

 

죽음은 슬픔을 동반합니다. 죽음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슬프다기보다는 영원한 이별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오랜 이별은 더 이상은 꿈꾸지 못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밥상머리에 둘러 앉아 오순도순 밥을 먹는 꿈, 열심히 돈을 벌어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딸내미에게 좋은 옷 한 벌 사주는 꿈,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잘 견디어 내며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꿈..., 뜻하지 않던 죽음이 그 꿈들도 함께 앗아간 것일 수도, 반대로 꿈의 상실이 죽음을 불러왔을 수도 있습니다. 꿈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살아갈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삶에 대한 애착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죽음은 생명의 상실이기도 하지만 꿈의 상실이기도 합니다. 많은 꿈들이 많은 죽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꿈을 지키는 일은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 사람의 꿈을 지키는 일이고 한 사람이 꿈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꿈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자책은, 그 안타깝고 불쾌한 감정은 언제나 형사들의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누군가의 꿈을 지키는 일은 무슨 큰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나의 가족, 친구, 이웃들에게 반갑게 건네는 눈인사나 따뜻한 위안의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꿈을 지키고 그 사람의 희망을 지키고 그 사람의 삶의 의지를 지키고 그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혼자서 고시원에서 생활하다가 스스로 꿈을 포기한 젊은 여성이 생애 마지막으로 연락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누구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 늘 자기 자신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누구라도 말 한마디 건네주었으면, 전화 한 통 걸어 주었다면, 이모티콘 문자 하나 보내주었다면 고단한 삶이었어도 꿈을 이어가고 또 키워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죽음 속에 파묻혀 그 죽음을 분석하고 파헤치면서 저는 누군가 꿈을 잃지 않도록 돕고 또 누군가 다른 누군가의 꿈을 빼앗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나의 소명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누구나 꿈일 잃지 않고 가치 있는 꿈을 함께 이루어 가는 세상을 말이죠. 그리고 그런 꿈이 분명 이루어지리라는 희망도 간직합니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나는 오늘도 죽음의 한 복판에 서서 삶을 꿈꿉니다.


6년 만에 나타난 아이

 

6년만이었습니다. 그 아이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건, 병원 중환자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병이 들어 온 몸이 시커멓게 변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아이는 회복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6년 전 강도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형사과 전체에 비상이 걸리고 우리팀이 주무팀이 되어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며칠을 고생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는데 잡고 보니 너무도 앳된 가출 청소년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 중에 제일 나이가 어렸지만 주범이었고 가슴 한 가득 커다란 불덩이를 품은 듯 했습니다. 그래도 조사를 받으면서 자기들끼리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짜장면 한 그릇을 킥킥거리며 뚝딱 비우는 녀석들을 보면 영락없는 평범한 사춘기 소녀들이었습니다. 형사미성년자라 소년법원으로 데리고 가는 형기차 안에서 아마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 밥은 꼭 챙겨먹어라. 죄는 지으면 안된다. 그리고 꿈은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아이들에게 늘상 하던 잔소리를 해댔을 겁니다. 판사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쨌든 그것이 그 아이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까맣에 잊고 살던 6년 후 어느 날 그 아이는 죽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내게 알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왜 집에서 뛰쳐나와야만 했을까? 왜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만 맴돌다가 끝내 몸과 마음이 상해 죽어야만 했을까? 아픈 질문은 여전히 가슴을 울립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소년형사로 수사 업무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년 뒤 강력반으로 자리를 옮긴 후 지금까지 강력반 형사를 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 아이들은 늘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빈 사무실에 데리고 들어갔더니 자기를 때리려는 줄 알고 '그래 때려라 때려! 때려 죽여!'하며 울부짖던, 아빠에게 늘상 매를 맞고 살았던 경호, 오토바이 날치기로 붙잡혀 왔다가 출소 후에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종종 경찰서에 놀러왔던 태영이는 오토바이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빠와 단 둘이 사는 반지하에 가서 곰팡이 가득한 방과 썩어가는 가구를 보고는 마음이 아팠던 도벽이 심했던 현아, 초등학생 때부터 친아빠에게 성폭력과 매질을 당했던 영미를 조사하다가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사무실을 뛰쳐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원조교제 성매매를 하고 받은 돈으로 쌀과 어린 동생에게 줄 과자를 샀던 할머니와 살던 신혜, 상가를 털며 돌아다니다 몇 번이나 붙잡혀 왔던 수용이는 도둑질만 하는 자신을 미워하고 처지를 비관하다가 끝내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존재만으로 얼마나 고귀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면, 그리고 주변에 어른들이 조금만 더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지금쯤 어엿한 어른이 되어 세상의 빛처럼 소금처럼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의 미래

 

타임머신을 타고 가지 않아도 나의 미래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꿈을 꾸며 자라서 행복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들이 만들어가는 그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세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되었을 지금의 나도 그 훨씬 좋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은 아이들의 꿈을 지키는 일은 결국 나의 미래를 돕는 일입니다. 나의 꿈과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아이들이 나의 미래이기도 한 것입니다.


촛불

 

촛불이 되고 싶습니다. 촛불은 밝고 환한 곳에서는 별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촛불은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비로소 밝게 빛납니다. 세상의 어두움 속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고 싶습니다. 촛농처럼 눈물이 흘러 나를 조금씩 태워 작아질지라도 비틀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어두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너희들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소중한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작은 촛불들이 모여 큰 불을 이루어 크고 놀라운 일을 해내는 기적을 꿈꿉니다.


경상대 응용통계학과 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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