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글을 읽으려고 시도해주어서 너무 아주 고맙다는 말을 우선 전하고 싶어. 보통 문집이라고 하면 생각이 차곡차곡 고여서 사상으로 넘쳐 흐를 때나 가능한 것이지 평생을 과학자로 살아온 나에게 내 생각을 써 내려가란 건 나체로 강남 한복판을 뛰어다니란 거랑 매한가지라 생각해, 이과의 특성상 연구와 기술개발에 30년을 보내왔기에 어떤 인문학적 소양을 개발한다거나 내 생각을 정리한 문집에 투고하는 글을 써본 게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 때가 마지막이었을 거로 생각해. 그래도 친구를 잘 둔 덕에 이런 기회가 있어 글이란 걸 다시 써보니 읽는 독자에겐 고문일 거로 생각하고 차라리 내가 살아온 경험을 조금이나마 남겨보는 건 어떨까 했어. 미국에 오래 있었다 보니 한글 맞춤법도 다 잊었고 과학적으로 판단해도 경험이 진리는 아니거든.
나는 식품생명공학과 92학번이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분자 생물학을 전공하게 됐어. 질리도록 듣던 수분 활성도를 넘어서 PCR이라고 하는 기계가 처음 들어오던 때 첨단이라는 감에 사로잡혀서 전공을 바꾸게 됐어.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하지 않겠지만 그때는 그랬네! 미국으로 유학하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우리 과 모든 교수님이 걱정을 해주시고 만류하셨지! 부유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론 미국 생활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셨기 때문에 그러셨는데 머 대부분의 젊은 혈기들이 그러하듯 그 백만 불짜리 조언을 받아들일 그릇조차 못됐던 내가 어느새 미국 땅을 밟고 있더라고...
처음 간 곳이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베일러의대 테크니션으로 취업하였다가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거기다 보니 영어가 들릴 때까지 2년 반을 보내게 됐고 그때 다시 한번 오오~ 하면서 최첨단~ 했던 게 단백질 구조학이었지…. 근데 PCR 때처럼 쉽지 않았어. 태어나서 처음 접한 듯 생소한 복소수와 오일러 공식도 이해가 안 되는데 파동함수가 이해될 턱이 없었어. 그나마 다행스럽게 컴퓨터는 친절하게 계산을 해주니까 변변한 X-ray 회절학 책하나 없던 시절에도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게는 되더군. 그때 처음으로 파이선이란걸 접하게 됐는데 몇백 줄의 파일을 손으로 쳐서 작성하다가 간단한 파일 작성기를 만들어 써보니 신세계였어.
그때 내가 연구하던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 프로젝트 중에 남는 단백질이 글로벌 제약사에 백신 개발 연구로 기술이전 되게 돼. 내가 그때 이해하던 하트리-포크 근사법이 주던 충격이나 그때 막 출시된 페도라 운영체계라던가 파이썬 프로그래밍 언어 등등 최첨단은 죄다 스킵하고 구조를 얻기 위해 안정시키던 단백질 찌꺼기가 그들에겐 중요한 거였어.
“내가 최첨단이라고 매료되던 것과는 다르게 가치 있게 평가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는걸 그제야 느끼게 된다니 말이야. 최첨단이고 내가 호기심이 있어 하고 알고 싶어 하고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그것 나의 동료 과학자들이 열광할 수도 있는 그것이 우리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는 아무런 가치를 전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거야. 이거에 격하게 공감한다고 하면 창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었다고 할 수가 있어. 소수의 지적 호기심이나 인류의 위대한 번영을 위한 아주 크리티컬한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기 위해 창업을 하진 않아. 물론 연구소 창업이나 비영리 법인 연구재단 등을 창업으로 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기업의 목적은 대다수 사람에게 필요한 가치를 전달하고 돈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따라서 창업 시점에 물건이 만들어져 있어야 하고 사줄 사람들도 많이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창업이란 걸 해버리고 말았어. 실수였지.
2018에 인공지능으로 약물 개발을 하는 스타트 업을 창업했는데 앞에서 이야기한 대원칙을 어겼지. 약물이니까 사 줄 사람은 언제든 있겠지만 팔 물건은 없고 아이디어만 있었거든. 아이디어는 절대 쉽게 팔 수 있는 물건은 아니거든. 대다수 사람에게 아이디어란 아무런 가치도 가져다줄 수가 없기에 적어도 MVP(Minimum Viable Product)라고 최소 기능이 구현된 물건이 있어야 창업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그걸 만들 때까지 절대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다든가 하면 정말 불행해지게 돼.
“MVP 없이 아이디어 창업하면 피눈물을 흘리게 되더라” 나의 경우가 그러했어.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했다가 진짜 내 목숨이랑 동업자 목숨 빼고 모든 것을 잃었네! 가정도 가족도 은행신용까지 모든 게 사라지고 노숙자들이랑 같이 줄을 서서 구호품 통조림 상자를 받아서 연명했어. 지금도 시금치 통조림을 보면 토할 거 같아. 미국에서는 가라지 창업이라고 해서 차고에서 창업을 많이 한다는데 이게 기본이라는 걸 몰랐던 거지…. 차고가 있으려면 개인 소유주택이 있어야 하고 이게 돼야 은행에서 돈이라도 빌릴 수 있는건데. 월세방에서 아이디어만 가지고 창업을 한 거야. 서버 놓을 데가 없어서 방 한구석에 조립해서 놨더니 집안이 찜통이 돼버렸고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싸구려 동네이다 보니 방역도 안 돼서 옆집으로부터 빈대들이 넘어오더라고 온몸이 구멍이 나는데 코드를 개발해야 했어. 직장을 다니면서 안정적인 월급이 나왔다면 이런 빈약한 동네로 이사도 오지 않았을 것이고 퇴근 후나 주말에 MVP를 개발했다면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코로나가 터져버려서 집에서 강제로 자가 격리해야 했고 스타트업 직원으로 등록되어야 했으니 실업급여 신청조차 안 됐어. 나의 바보스러운 의사결정이 하도 분하고 후회되니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안구 압력이 상승해서 왼쪽 눈에서 피가 흐르더군. 그때 뚫린 갈색 반점을 거울로 볼 때마다 생각해 바보스러운 의사결정을 하면 피눈물을 흘리는구나 다시는 그런 바보짓을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딱 3년을 보내니까 주위 사람들이 묻더군. 왜 포기 안 하냐고. 난 대답도 안했어 머 더 잃을 게 없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배가 너무 고팠는데 머리가 그렇게 맑고 명쾌할 수 없었거든. 여기서 어떻게 더 안 좋아져! 여기가 이미 바닥인데! 남은 건 나라는 정보를 저장하고 있는 기록 매체뿐인데 한 톨의 미련도 없었거든. 그 지경이 되고 나니 내 주위 사람들이 명확히 나뉘어 있는 걸 발견했어. 나조차도 이제는 하지 않는 걱정을 하늘이 무너질 듯이 하면서 왜 포기하지 않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사람들과 내가 부탁한 적도 없는데 나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로 말이지. 회사로 불러서 소일거리를 맡겨주시고 점심 도시락도 챙겨주시는 분, 그 어려운 상황에서 소액이나마 투자를 해주시는 분들 사무실 한켠을 내어주시고 정부 지원과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 난 그때 비로소 발견하게 된 거지, 창업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 이게 없으면 기업은 죽었다 깨나도 못 일어나 그리고 그것을 얻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포기하지 않는 고집이 아니라 성실함과 꾸준함이었어. 그때 도와주시던 사장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 “그냥 꾸준히 하다 보면 밥은 굶지 않터라구요” 그게 업계의 대원칙이었던 거였어! 나라는 최박사를 믿은게 아니라 꾸준함이 있으면 절대 망하지 않는다를 알고 계셔서 믿어 주신 거라는 거.
근데 대한민국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하나 더 있어. “창업진흥원”. 아이디어 단계에서 돈을 투자해주는 유일한 기관이자 진짜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계획서와 PPT를 보시고 묵묵히 지원해주신 심사위원으로 들어온 교수님들은 정말 감동이었지. 뭐랄까 미국에서 맨땅에 창업해서 피눈물을 직접 경험해봐야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랄까. 이 이 자리를 빌려 창업진흥원 관계자분들과 초창패 주관기관 가천대 분들 그리고 멘토님들 심사위원으로 들어오셨던 컴퓨터 공학과 교수님들과 생물학과 교수님들 TIPS 프로그램 관계자분들 무엇보다 대전팁스타운 운영팀들 너무 감사합니다. 창업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정부가 여러분을 후원해드립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으세요.
아, 그리고 창업할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읽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대전 팁스타운 찾아오시면 커피 한 잔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자연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최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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