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되어 만날 친구에게 | 새로운 창
Poems
- 중년이 되어 만날 친구에게
- 새로운 창
중년이 되어 만날 친구에게
그 시절, 멜빵바지에 발랄하고 당돌했던 말투가 여전하기를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주던 표정이 살아 있기를
자율학습 땡땡이로 하늘만큼 기뻤던 마음이 다시 부풀어 오르기를
평범해서 일기에 적을 말이 없던 그저 그런 하루도
편지지 세 장을 꽉 채운
네 글솜씨가 손가락에 지문처럼 붙어 있기를
뉴스로 전해 듣는 사건이 네 입을 통해 해석되면
세상을 깊이 있게 의심하고 들여다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눈빛이 여전히 빛나기를
이젠,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과 경쾌한 아침 새소리에
하루를 감사하게 시작하며
해가 질 때마다 스스로 겸허해지는
소중한 친구에게
귀와 마음을 열 줄 아는 주름이 늘었기를
비가 조용히 내리는 아침, 봄에 그려본다.
나 역시 그런 모습으로 너를 다시 만나기를.
새로운 창
1.
세상에 첫 울음으로 신고를 했던 네가
떠먹여주고 입혀주는 이
자장가를 불러주고 똥기저귀 갈아주는 이가 없으면
생존하기 불가능했을 네가
이제 나를 살린다.
초음속기 마하2보다 빨리 공전하는 지구 속
더 정신없이 돌아가는 손바닥 안에서
작동하는, 어지러운 순간 연결 세상
월미도 놀이기구보다 어지러워
현기증 나는 손바닥 안
무한대로 펼쳐지는 세상에
나는 너를 따라 더듬더듬 발을 뗀다.
2.
레코드 가게 종소리 울리며 부리나케 들어가
얇은 비닐 뜯는 손맛은 손가락 터치로 바뀌고
아이돌 신곡이 스마트폰에서 첫 음원 공개되면
프리미엄 인터넷 팬미팅을 스크린으로 할 수 있는
젠장, 빌어먹게 편한 세상에
나는 너를 따라
투명 안대 한 침침한 시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긴다.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최석경